

[#M_ 그가 바스티유를 떠난 이유,,,| less.. |영웅을 쫓아낸 바스티유 오페라단
황 헌 / 문화방송 보도제작부 기자
1990년 3월 17일 저녁 프랑스의 국립 바스티유오페라 개막공연장에는 2천7백여 청중들의 감동어린 기립박수 소리가 15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만 37세의 젊은 지휘자가 연출해낸 4시간 36분의 장엄한 드라마에 대한 갈채였다.
한국이 낳은 천재적인 음악가 정명훈은 그에 대한 의구심을 보란 듯이 떨쳐버리고 첫 작품「트로이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린 셈이다. 당시 프랑스의 유력지「르 몽드」는 '정명훈의 지휘아래 바스티유오페라는 혼을 찾았다.' 고 극찬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정명훈씨는 프랑스 정부의 문화훈장을 받은 데 이어 프랑스 음악펑론가협회로부터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된다.
정명훈과 바스티유의 만남은 이처럼 아름다웠고 양자는 서로에게 커다란 성장을 가져다 준 공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명훈은 바스티유의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그의 음악경력에 화려함을 더했고, 바스티유는 정명훈을 만남으로써 세계 정상급 오페라단의 하나로 거듭날 수 있었다.
5년 전 정씨를 바스티유오페라의 상임지휘자로 선임한 것은 프랑스의 사회당 정부. 그러나 지난해 3월 사회당이 아닌 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정치가 예술의 세계에 개입하게 된다. 우파정부는 올 2월 오페라단 개혁안을 채택. 극단의 경영진을 개편했다. 새 정부가 내건 외견상의 명분은 방만한 오페라 경영을 감량한다는 것. 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의 이유일 뿐 내심 라이벌정파가 임명한 사람들이 국립 오페라를 좌우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옹졸함에서 이번 정명훈씨 해고 사태는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음악감독이란 자리는 국내 교향악단에는 없는 제도로, 레퍼토리 선정, 객원지휘자 및 연출가선택. 솔리스트 선정에 이르는 모든 권한을 갖는 절대적 지위를 누린다. 신임 파리오페라좌 단장(통상 파리오페라로 불려지는 오페라 가르니에와 바스티유오페라를 총괄하는 통합 경영자적 성격을 지니는 사람)으로 임명된 위그 갈씨는 지난 8월 초 정명훈씨에게 음악감독의 권한을 박탈하고. 오는 2천년까지의 계약기간도 1997년까지로 앞당기자며 계약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씨는 당연히 재협상 테이블에 나서지 않았고, 오페라 측은 이를 이유로 8월 12일 정명훈씨를 일방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정씨로부터 당시의 내막을 들어보자. '협상에 불응한 것은 그들이지 내가 아니다. 새 경영진은 결코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의 재계약을 요구했다. 그들은 적자운영과 개혁을 이유로 나를 쫓아내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그들은 이미 단원 130명을 감축해 음악감독인 내 지위를 흔들어 놓았고 오페라의 대수술 의도를 노골화했다. 나는 단원들과 사이가 좋았다. 결국 정치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프랑스혁명 2백주년을 기념해 성대하게 개관된 바스티유오페라는 개관 당시부터 경영진 내부의 갈등, 공연 취소를 몰고 온 기술직원들의 수 차례 파업 그리고 조명 음향 등 첨단기술체계의 불완전한 작동과 같은 문제로 줄곧 불안한 상태에 있었던 것도 사실. 그러나 음악 자체만큼은 항상 최상을 유지할 수 있었고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게 파리 음악평단의 한결같은 평가였다. 그건 바로 정명훈씨의 사심없는감독직 수행과 탁월한 작품해석 능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명훈씨는 해고통고를 받은 뒤 사실은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파리교외의 쁘와 시라는 작은 도시의 한적한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정씨는 집 부근 숲속에서 필자를 만나 '그 동안 재충전의 기회가 오길 은근히 바라고도 있었고, 새 정부측이 보여준 비열한 모습에 신물도 나고 해서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떠나버리려 했다.' 고 운을 뗀 정씨는 '그러나 그대로 물러날 경우 마치 내게 커다란 문제가 있어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처럼 오페라측이 떠들어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법정투쟁까지 불사하기에 이르렀다.'며 괴로운 심경을 털어놓다.
이렇게 해서 정씨 해고사태는 지리한 법정투쟁의 터널로 접어드는 듯 했다.
파리법원은 1차로 8월 29일 '정명훈 감독과 오페라단이 맺었던 기존 계약은 유효하다' 는 판정을 내렸고, 정씨는 이를 근거로 정상출근을 시도했으나 오페라측은 그의 일자리 복귀를 힘으로 저지했다. 명백한 횡포였다. 파리법원은 이틀 뒤 정명훈씨를 배제한 채 가을공연 연습을 한 기간만큼 하루 7백50만 원 정도의 보상금을 정감독에게 지불할 것을 명령했고 오페라측은 1차 심리결과와 보상금 지급결정에 불복해 항소를 냈었다.
이 과정에서 우파정부와 가까운「르 피가르」지 같은 일부 매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프랑스 언론들은 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맹렬히 비난했다. 프랑스의 최대 방송사인 '프랑스2' 채널은 '정명훈 없는 바스티유오페라는 상상도 못할 만큼 바스티유오페라는 정감독의 덕을 입었다' 고 했고 그런 감독을 해고한 정부는 '배신자'이자 '프랑스의 도덕을 떨어뜨린 자' 라고 말할 정도였다. 또한 여름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단원들 역시 지휘자 정명훈의 해고사태를 접하면서 경영진의 처사에 커다란 반발감을 드러냈다. 9월 초 단원노조는 정감독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 찬반투표까지 감행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비록 결과는 부결로 끝났지만 단원들이 보인 태도에 극장측 스스로도 움찔했을 것이 분명하다. 첼리스트이자 단원노조위원장인 베네디띠씨는 '만약 극장측이 일부 단원들에게 윽박지르지만 않았어도 파업 찬반투표는 가결됐을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또 장 페리와 나딸라 고디머란 이름의 부부 첼리스트 단원들은 '우리 모든 단원들은 정을 좋아한다. 모든 단원들이 휴가를 떠나고 없는 상황에서 극장측이 일방 해고를 한 것은 수치스러울 만큼 부당한 일이다' 며 정감독이 계속 남아 있기를 희망했다
일련의 저항에 부딪친 프랑스정부는 마침내 무조건 밀어붙이기 전략을 포기하고 정명훈 감독과 협상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극한 대결로 치닫던 양측은 일방 해고 발표 36일만에 명분과 실리를 나눠가지는 선에서 사태를 매듭지었다. 즉 바스티유측은 법원이 명령한 보상금과 앞으로 2년치의 연봉 전액을 지불하기로 했고, 정씨는 이번 가을시즌의 개막작품 공연까지만 지휘봉을 잡기로 하는 선에서 절충이 이뤄졌다. 이렇게 해서 정명훈씨는 가을시즌 개막공연 「시몬 보카네그라」를 끝으로 바스티유를 떠나게 됐다. 정씨는 극장측과의 절충이 끝난 뒤 곧바로 연습에 들어감으로써 예술인으로서의 성숙한 자세를 또 한 번 보여준다.
1994년 9월 19일 바스티유오페라는 4년 6개월 전 개막공연 당시의 감흥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분위기가 연출된다. 프랑스 평단으로부터 풋사과란 우려 섞인 예상을 깨고 감동의 무대를 선보였던 1970년 3월의 상황과는 달리, 청중들은 막이 오르기 전부터 부당하게 바스티유를 떠나게 된 젊은 한국인 지휘자를 위해 시위에 가까운 톤으로 극장측에 야유를 보냈다.
정명훈 감독의 고별공연 작품이 된「시몬 보카네그라」는 베르디의 3막 오페라로 시민계급과 귀족계급의 갈등이 심화되던 14세기 제노아 공화국을 무대로 한 작품. 시민계급의 추대로 총독에 뽑힌 주인공 보카네그라가 딸의 결혼을 둘러싸고 귀족계층과 갈등을 빚던 끝에 독주를 마시고 죽는다는 게 그 줄거리다. 9월 19일 공연은 안타깝게도 엉망이었다는 것이 중론. 즉 여주인공인 마리아보카네그라 역의 칼린 에스페리언은 긴장 끝에 1막에서부터 음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난조를 보였고. 주인공인 시몬역을 맡은 러시아의 바리톤 체르노프는 갑작스런 발병으로 아예 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급기야 미국인 버르치날이 대타로 등장했다. 게다가 조명이나 무대변화 등도 호흡의 불일치로 일관했다. 한마디로 공연수준 자체는 형편없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물론 짧은 연습기간과 어수선한 오페라 내부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2천7백여 청중들은 막이 올라가고 정명훈 감독이 지휘대에 오르는 순간, 힘찬 박수와 환호로 그를 맞았고, 개막공연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기립박수로 그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명훈과 바스티유의 공식적인 작별은 10월 14일 이뤄졌다.
1989년 다니엘 바렌보임의 후임으로 정명훈을 음악감독과 지휘자로 선임한 당사자인 쟈끄 랑 전 문화부 장관(현 블르와 시장)은 정부의 계약 불이행과 비도덕적 처사로 결국 정명훈씨가 해고된 것이며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은 이제 프랑스를 예술을 아끼는 나라로 부르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얼굴을 붉혔다. 그는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을 보며 자신이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고까지 말할 만큼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정트리오의 맏이인 정명화씨는 '바스티유에서 떠나게 된 것이 어쩌면 동생에게 커다란 성장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며 '동생은 이 모든 일을 스스로 잘 소화해낼 것' 이라고 말했다.
정명훈씨 자신은 '바스티유에서 음악인생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거기서 끝날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담담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고 털어놓았다.
그는 독일이나 이태리의 유명음대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오던 터라, 잠시 한국에 귀국했다가 새로운 음악생활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국 슬픈 상황을 맞은 것' 이라며 말끝을 흐림으로써 바스티유에 쏟았던 그의 열정과 노력이 얼마나 진중하고 큰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프랑스혁명 , 그리고 그 혁명정신을 기리겠다며 프랑스 정부가 건립한 바스티유오페라는 결국 시즌 도중 음악감독과 지휘자를 교체하고 청중이나 언론들로부터 배신자란 칭호를 들어가며 올 가을시즌 공연을 파행으로 몰고 갔다. 음악인 정명훈에게 바스티유의 지휘자 자리는 분명 빼놓을 수 없는 탁월한 경력의 하나로 기억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가 그의 장구한 음악인생의 종창역은 또한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
정명훈씨는 '나의 꿈은 조국에 세계적인 수준의 교향악단이나 오페라단을 만들어 우리 음악의 우수성을 만방에 알리는 데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번 바스티유오페라에서의 능력 발휘와 일방적인 힘에 의한 중도하차라는 경험은 프랑스에는 수치를 한국에는 살찐 경험으로 기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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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멋있어~~~
난 정명훈샘이 좋더라<<예가 명훈샘을 어서 봤다고 -.-:;;
헐 신영재의 이명훈샘과 성함이 같으시네….
헐………………..정말 헐…………………….
하지만 샘 좋으시겠다…………………….
그냥 사진 올리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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