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아이러브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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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헌 / 문화방송 보도제작부 기자
1990년 3월 17일 저녁 프랑스의 국립 바스티유오페라 개막공연장에는 2천7백여 청중들의 감동어린 기립박수 소리가 15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만 37세의 젊은 지휘자가 연출해낸 4시간 36분의 장엄한 드라마에 대한 갈채였다.
한국이 낳은 천재적인 음악가 정명훈은 그에 대한 의구심을 보란 듯이 떨쳐버리고 첫 작품「트로이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린 셈이다. 당시 프랑스의 유력지「르 몽드」는 '정명훈의 지휘아래 바스티유오페라는 혼을 찾았다.' 고 극찬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정명훈씨는 프랑스 정부의 문화훈장을 받은 데 이어 프랑스 음악펑론가협회로부터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된다.
정명훈과 바스티유의 만남은 이처럼 아름다웠고 양자는 서로에게 커다란 성장을 가져다 준 공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명훈은 바스티유의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그의 음악경력에 화려함을 더했고, 바스티유는 정명훈을 만남으로써 세계 정상급 오페라단의 하나로 거듭날 수 있었다.
5년 전 정씨를 바스티유오페라의 상임지휘자로 선임한 것은 프랑스의 사회당 정부. 그러나 지난해 3월 사회당이 아닌 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정치가 예술의 세계에 개입하게 된다. 우파정부는 올 2월 오페라단 개혁안을 채택. 극단의 경영진을 개편했다. 새 정부가 내건 외견상의 명분은 방만한 오페라 경영을 감량한다는 것. 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의 이유일 뿐 내심 라이벌정파가 임명한 사람들이 국립 오페라를 좌우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옹졸함에서 이번 정명훈씨 해고 사태는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음악감독이란 자리는 국내 교향악단에는 없는 제도로, 레퍼토리 선정, 객원지휘자 및 연출가선택. 솔리스트 선정에 이르는 모든 권한을 갖는 절대적 지위를 누린다. 신임 파리오페라좌 단장(통상 파리오페라로 불려지는 오페라 가르니에와 바스티유오페라를 총괄하는 통합 경영자적 성격을 지니는 사람)으로 임명된 위그 갈씨는 지난 8월 초 정명훈씨에게 음악감독의 권한을 박탈하고. 오는 2천년까지의 계약기간도 1997년까지로 앞당기자며 계약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씨는 당연히 재협상 테이블에 나서지 않았고, 오페라 측은 이를 이유로 8월 12일 정명훈씨를 일방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정씨로부터 당시의 내막을 들어보자. '협상에 불응한 것은 그들이지 내가 아니다. 새 경영진은 결코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의 재계약을 요구했다. 그들은 적자운영과 개혁을 이유로 나를 쫓아내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그들은 이미 단원 130명을 감축해 음악감독인 내 지위를 흔들어 놓았고 오페라의 대수술 의도를 노골화했다. 나는 단원들과 사이가 좋았다. 결국 정치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프랑스혁명 2백주년을 기념해 성대하게 개관된 바스티유오페라는 개관 당시부터 경영진 내부의 갈등, 공연 취소를 몰고 온 기술직원들의 수 차례 파업 그리고 조명 음향 등 첨단기술체계의 불완전한 작동과 같은 문제로 줄곧 불안한 상태에 있었던 것도 사실. 그러나 음악 자체만큼은 항상 최상을 유지할 수 있었고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게 파리 음악평단의 한결같은 평가였다. 그건 바로 정명훈씨의 사심없는감독직 수행과 탁월한 작품해석 능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명훈씨는 해고통고를 받은 뒤 사실은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파리교외의 쁘와 시라는 작은 도시의 한적한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정씨는 집 부근 숲속에서 필자를 만나 '그 동안 재충전의 기회가 오길 은근히 바라고도 있었고, 새 정부측이 보여준 비열한 모습에 신물도 나고 해서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떠나버리려 했다.' 고 운을 뗀 정씨는 '그러나 그대로 물러날 경우 마치 내게 커다란 문제가 있어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처럼 오페라측이 떠들어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법정투쟁까지 불사하기에 이르렀다.'며 괴로운 심경을 털어놓다.
이렇게 해서 정씨 해고사태는 지리한 법정투쟁의 터널로 접어드는 듯 했다.
파리법원은 1차로 8월 29일 '정명훈 감독과 오페라단이 맺었던 기존 계약은 유효하다' 는 판정을 내렸고, 정씨는 이를 근거로 정상출근을 시도했으나 오페라측은 그의 일자리 복귀를 힘으로 저지했다. 명백한 횡포였다. 파리법원은 이틀 뒤 정명훈씨를 배제한 채 가을공연 연습을 한 기간만큼 하루 7백50만 원 정도의 보상금을 정감독에게 지불할 것을 명령했고 오페라측은 1차 심리결과와 보상금 지급결정에 불복해 항소를 냈었다.
이 과정에서 우파정부와 가까운「르 피가르」지 같은 일부 매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프랑스 언론들은 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맹렬히 비난했다. 프랑스의 최대 방송사인 '프랑스2' 채널은 '정명훈 없는 바스티유오페라는 상상도 못할 만큼 바스티유오페라는 정감독의 덕을 입었다' 고 했고 그런 감독을 해고한 정부는 '배신자'이자 '프랑스의 도덕을 떨어뜨린 자' 라고 말할 정도였다. 또한 여름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단원들 역시 지휘자 정명훈의 해고사태를 접하면서 경영진의 처사에 커다란 반발감을 드러냈다. 9월 초 단원노조는 정감독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 찬반투표까지 감행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비록 결과는 부결로 끝났지만 단원들이 보인 태도에 극장측 스스로도 움찔했을 것이 분명하다. 첼리스트이자 단원노조위원장인 베네디띠씨는 '만약 극장측이 일부 단원들에게 윽박지르지만 않았어도 파업 찬반투표는 가결됐을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또 장 페리와 나딸라 고디머란 이름의 부부 첼리스트 단원들은 '우리 모든 단원들은 정을 좋아한다. 모든 단원들이 휴가를 떠나고 없는 상황에서 극장측이 일방 해고를 한 것은 수치스러울 만큼 부당한 일이다' 며 정감독이 계속 남아 있기를 희망했다
일련의 저항에 부딪친 프랑스정부는 마침내 무조건 밀어붙이기 전략을 포기하고 정명훈 감독과 협상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극한 대결로 치닫던 양측은 일방 해고 발표 36일만에 명분과 실리를 나눠가지는 선에서 사태를 매듭지었다. 즉 바스티유측은 법원이 명령한 보상금과 앞으로 2년치의 연봉 전액을 지불하기로 했고, 정씨는 이번 가을시즌의 개막작품 공연까지만 지휘봉을 잡기로 하는 선에서 절충이 이뤄졌다. 이렇게 해서 정명훈씨는 가을시즌 개막공연 「시몬 보카네그라」를 끝으로 바스티유를 떠나게 됐다. 정씨는 극장측과의 절충이 끝난 뒤 곧바로 연습에 들어감으로써 예술인으로서의 성숙한 자세를 또 한 번 보여준다.
1994년 9월 19일 바스티유오페라는 4년 6개월 전 개막공연 당시의 감흥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분위기가 연출된다. 프랑스 평단으로부터 풋사과란 우려 섞인 예상을 깨고 감동의 무대를 선보였던 1970년 3월의 상황과는 달리, 청중들은 막이 오르기 전부터 부당하게 바스티유를 떠나게 된 젊은 한국인 지휘자를 위해 시위에 가까운 톤으로 극장측에 야유를 보냈다.
정명훈 감독의 고별공연 작품이 된「시몬 보카네그라」는 베르디의 3막 오페라로 시민계급과 귀족계급의 갈등이 심화되던 14세기 제노아 공화국을 무대로 한 작품. 시민계급의 추대로 총독에 뽑힌 주인공 보카네그라가 딸의 결혼을 둘러싸고 귀족계층과 갈등을 빚던 끝에 독주를 마시고 죽는다는 게 그 줄거리다. 9월 19일 공연은 안타깝게도 엉망이었다는 것이 중론. 즉 여주인공인 마리아보카네그라 역의 칼린 에스페리언은 긴장 끝에 1막에서부터 음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난조를 보였고. 주인공인 시몬역을 맡은 러시아의 바리톤 체르노프는 갑작스런 발병으로 아예 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급기야 미국인 버르치날이 대타로 등장했다. 게다가 조명이나 무대변화 등도 호흡의 불일치로 일관했다. 한마디로 공연수준 자체는 형편없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물론 짧은 연습기간과 어수선한 오페라 내부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2천7백여 청중들은 막이 올라가고 정명훈 감독이 지휘대에 오르는 순간, 힘찬 박수와 환호로 그를 맞았고, 개막공연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기립박수로 그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명훈과 바스티유의 공식적인 작별은 10월 14일 이뤄졌다.
1989년 다니엘 바렌보임의 후임으로 정명훈을 음악감독과 지휘자로 선임한 당사자인 쟈끄 랑 전 문화부 장관(현 블르와 시장)은 정부의 계약 불이행과 비도덕적 처사로 결국 정명훈씨가 해고된 것이며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은 이제 프랑스를 예술을 아끼는 나라로 부르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얼굴을 붉혔다. 그는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을 보며 자신이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고까지 말할 만큼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정트리오의 맏이인 정명화씨는 '바스티유에서 떠나게 된 것이 어쩌면 동생에게 커다란 성장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며 '동생은 이 모든 일을 스스로 잘 소화해낼 것' 이라고 말했다.
정명훈씨 자신은 '바스티유에서 음악인생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거기서 끝날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담담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고 털어놓았다.
그는 독일이나 이태리의 유명음대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오던 터라, 잠시 한국에 귀국했다가 새로운 음악생활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국 슬픈 상황을 맞은 것' 이라며 말끝을 흐림으로써 바스티유에 쏟았던 그의 열정과 노력이 얼마나 진중하고 큰 것이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프랑스혁명 , 그리고 그 혁명정신을 기리겠다며 프랑스 정부가 건립한 바스티유오페라는 결국 시즌 도중 음악감독과 지휘자를 교체하고 청중이나 언론들로부터 배신자란 칭호를 들어가며 올 가을시즌 공연을 파행으로 몰고 갔다. 음악인 정명훈에게 바스티유의 지휘자 자리는 분명 빼놓을 수 없는 탁월한 경력의 하나로 기억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가 그의 장구한 음악인생의 종창역은 또한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
정명훈씨는 '나의 꿈은 조국에 세계적인 수준의 교향악단이나 오페라단을 만들어 우리 음악의 우수성을 만방에 알리는 데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번 바스티유오페라에서의 능력 발휘와 일방적인 힘에 의한 중도하차라는 경험은 프랑스에는 수치를 한국에는 살찐 경험으로 기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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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아주 희한한 교통사고가 났네요. 자동차가 날라서 2층 집 서재로 돌진한 일인데 어떻게 이런일이 생긴것인지 의문이네요.


저역시 예전에 빗길에 미끄러져 연석에 부딪혀 차가 위로 약간 떠올라 가로등과 충돌한 적이 있지만…
저정도의 높이로 솟구치려면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려야 하는지 궁금하네요… 표지판에는 30 마일(48Km) 제한속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출처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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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새어 다빈치 코드를 읽고 나서 남은 의문점들에 대해 동아일보에 기재된 글을 옮겨 보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소설 ‘다빈치 코드’는 이 그림에 예수의 결혼이라는, 금기시됐던 소재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여주인공 소피 느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깜짝 놀란다. 예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인물이 ‘흐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과 섬세하게 모아 쥔 손, 살짝 솟은 가슴’을 가진 영락없는 여자였던 것이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제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너희들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고 예언한 직후의 미묘한 분위기를 그린 작품이다. 분명 예수와 12명의 제자만 등장해야 할 장면에 웬 여자인가.
지난해 미국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소설 ‘다빈치 코드’는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이고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해 자식을 뒀다’는 파격적인 가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국내에서도 6월 번역 출간된 뒤 지금껏 대부분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로 인기다.
소설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수의 숨겨진 비밀을 지켜 온 시온 수도회의 멤버였고 자신의 그림을 통해 후세에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그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는 그림이 바로 ‘최후의 만찬’이다.
○ ‘최후의 만찬’의 미스터리
‘최후의 만찬’에서는 몇 가지 논란이 될 만한 모습이 눈에 띈다.
우선 예수의 오른쪽 옆에 앉아 있는 제자가 여성으로 착각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점. 다빈치 코드에 따르면 이 인물은 (예수와 결혼한) 마리아 막달레나다. 수염이 없는 갸름한 얼굴, 흰 피부와 긴 머리가 여성으로 착각할 만하다. 더욱이 예수는 붉은 겉옷에 푸른 망토를 걸쳤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푸른 겉옷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그려 놓음으로써 기독교가 예수의 결혼을 숨기기 위해 여성성을 철저히 배제해 왔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려 했다는 것이다.
이 인물의 오른쪽 옆에 앉아 말을 걸고 있는 인물은 베드로다. 그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몸을 기대며 손을 마치 칼날처럼 펴서 그녀의 목에 들이대고 있다.다빈치 코드는 이를 예수가 자신의 후계자로 마리아를 지명한 데 대해 베드로가 반발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림 왼편 제자들 사이에 불쑥 나온 단검을 들고 있는 손이 누구 것이냐 하는 점도 논란거리. 다빈치 코드는 이에 대해 ‘익명의 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해부학적 지식이 풍부했고 누구보다 인체 묘사가 정확하기로 이름났는데 이 손은 너무나 어색한 위치에 그려져 있다.
이 밖에도 테이블 어느 곳에도 ‘성배(聖杯)’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빈치 코드에 따르면 성배는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임신한 여성’을 나타내는 은유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반론들
레오나르도 다빈치 외에도 ‘최후의 만찬’을 다룬 그림을 그린 화가는 많다. 예수가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는 장면은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극적인 순간의 하나로 성화(聖畵)의 단골 소재였다.
논쟁의 핵심은 역시 예수 옆자리의 인물이 누구인가 하는 점.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여성처럼 보이는 이 인물은 사도 요한이다. 사도 요한은 12명의 제자 가운데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미소년이었다. 예수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은 제자로 알려져 있어서 최후의 만찬을 그린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도 언제나 예수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 것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예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슬퍼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벽화 상당 부분이 훼손돼 성별을 구분하기 어렵지만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이 남성복이다 △만약 그가 마리아라면 제자가 11명밖에 안 남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여러 장의 사전 스케치에도 여성의 얼굴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소설적 상상력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모습은 어떻게 해석될까. 대체적으론 성질 급한 베드로가 예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배신자가 누구냐”라고 예수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요한에게 묻는 모습이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손을 목에 댄 것이 아니라 귓속말을 하기 위해 어깨를 잡은 것이다.
‘익명의 손’은 베드로의 손이라는 게 전통적인 견해다. 물론 구도가 어색하긴 하지만 이 칼은 단검이 아니라 식사에 쓰였던 나이프였다. 예수가 체포되기 직전 베드로가 대사제의 종인 말코스의 오른 쪽 귀를 칼로 자르는데 그림이 이를 암시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50여년 후 바사노 자코포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도 베드로는 칼을 쥐고 있다.
성배가 없다는 점도 별 문제가 안 된다. ‘최후의 만찬’은 제자의 배신과 예수의 희생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이 생략되는 경향이 많았다.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최후의 만찬’에는 빵을 써는 칼도, 포도주 잔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빵과 접시뿐이다.
○ 해석의 문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이탈리아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에 그려진 가로 880cm, 세로 460cm의 대형 벽화다. 제작된 지 500여년이 됐고 장소가 수도원 식당이다 보니 습기에 의해 심하게 훼손됐다. 그림을 둘러싼 논란은 수백년에 걸쳐 이뤄진 훼손과 수많은 덧칠과도 연관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에서 후세를 위한 코드를 숨겼는지, 후세가 이를 제대로 해석했는지 여부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오히려 성서 초기 역사의 해석이 논란거리다.
다빈치 코드가 800만부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영화화가 결정되면서 미국 내에선 책이 담고 있는 종교관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다빈치 코드 뒤집기’, ‘다빈치 코드의 사기극’ 등 현직 종교인들이 낸 책도 10여권 출판됐다.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의 저자인 마거릿 스타버드는 “예수가 결혼했다거나 마리아가 그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증명할 길은 없다. 하지만 이 이설이 중세에 폭넓게 신봉됐던 이교의 교의이고 수많은 예술작품과 문학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로마 교회에 의해 심하게 공격당했고, 냉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댈러스 신학대의 대럴 보크 교수는 뉴욕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논쟁이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초기역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재해석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004년8월13일자 동아일보

이 친구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
함께 일하던 나나가 머리에 설탕이 묻어 있는 걸 보고 이 친구가 다가가 나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끼하게 한마디 합니다.
You are too sweet.
쓰러지는 나나… 이 친구 진정한 Romanticist 입니다.

이 표를 보니 불현듯 작년 여행이 생각나네요.
작년 한주가 저를 보러 찾아왔을때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사를 통해 팩키지 여행을 신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행날짜에 출발지로 가서 확인해보니 우리 그룹은 하루일찍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만 날짜를 잘못 계산한 것이었습니다. 앞길이 캄캄했습니다. 여행사에서는 우리보고 직접 프랑스까지 찾아가라고 합니다. 달랑 호텔 주소 하나 가지고 ……아니면 여행경비를 포기하던가. 정말 눈앞이 캄캄하고 앞길이 막막하더군요. 그래도 다행히 아직 그룹이 프랑스에 있기에 희망은 있었습니다.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 유로스타…….
당장 Waterloo 로 가서 single way 로 표를 예매 – 헉 한사람에 £150 (미리 예약하면 29 파운드에 갈수 있는데) 가뜩이나 통장에 잔고도 없어 죽겠는데 결국 overdraft 를 하고 말았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유로스타를 타게 되었습니다.


Oxford railway station 에 오시면 제가 아르바이트 삼아 일하는 곳 Stopgap (지금은 Shop 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입니다. 물론 Uppercrust 와 Pumpkin 도 저희가 관리하지만… 오늘은 제가 Shop 에서 일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2평남짓의 작은 구멍가게… 손님이 꾸준히 있는 것이 아니라 열차시간에 맞추어 갑자기 많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한가하기도 합니다. 금요일 오후면 많은 여행객과 주말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역안은 붐빕니다.
열차시간에 쫒기는 한 손님이 가게문에 몸을 반 걸치며 10 Pound 를 주며 20 Pence Please 라고 말합니다.
저는 공중전화를 사용하고 싶어 잔돈을 바꾸러 오는 사람이 많기에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Till을 열 수 없으니 다음 손님 Serve 할때 바꾸어 주겠다고 정중히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손님의 계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늘어난 손님에 잔돈을 바꾸어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기다리라고만 하고 다른 손님을 계속 계산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이 사람이 버럭 화를 내며 자기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 먼저 해주냐고 다그칩니다. 전 당당히 내가 우리 손님 먼저 받지 잔돈을 먼저 바꾸어 주어야 되냐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담배 20 Benson & Hedges 를 가리키며 얼굴을 붉히는 그 사람….

처음 몇일간은 그들의 Marlboro 발음에 무척 당황해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담배 이름들…
여러분 금연합시다.
우리가게에서 10,400 원 (£5.20)에 판매합니다.
많이 비싸죠?
한국도 요즘 담배 값 인상한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금연을……

캠브리지에서 올린 단 한장의 사진으로는 만족을 못하기에 이렇게 한장더….
피부가 너무좋아 굳이 수정 할 필요도 없었고 단지 채도를 약간 빼주었을 뿐입니다.
여기서 잠깐
저번에 저희 Oxford 를 관할하던 General Manager 가 해고 되면서 저의 Unit 은 Central 을 담당하는 GM Andrew Cunnington 에게 편입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Andrew 가 저의 Unit 을 방문하게 되던 날이었습니다. Tony 와 함께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staff 들과 인사를 나누며 저역시 소개를 받았습니다. 사실 처음 자신의 이름을 말할때 저역시 확실히 듣지는 못했습니다. 한참 후 완주가 저에게 다가 오며 한마디 던집니다. “오빠 저 사람도 나와 이름이 같아요… 완주래요….!”
정말 그녀가 너무 귀엽습니다.
하나더
관심 있으신 분은 조용히 메일 주소를 남겨 주십시요….전해 드리겠습니다.